우린 그저 친구일 뿐
w. 트롤리(@trolli_hq)
토오루, 우린 친구지?
… 왜 당연한 걸 물어 (-)짱? 설마 우리 친구 아니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 깜짝 놀랐네. ’ 게임을 하고 있던 눈알을 재빠르게 굴려 쳐다봤지만 너는 정면을 응시한 채 묻고 있었다. 하마터면 어린 아이가 불장난을 하다 들킨 것 같은 제 표정을 보일 뻔했다. 이쪽을 보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핸드폰을 바라봤지만 혹시나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떨리진 않았나 걱정하기에 바빠 들고있는 핸드폰 스크린에 게임오버 문구가 뜬 것도 모른 채로 들고 있는 걸 들키고 말았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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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너무 추워 이와짱 !”
아오바죠사이 고교 등교의 첫날. 목도리에 장갑까지 끼고서 춥다고 호들갑이란 호들갑은 다 떨며 걷는 오이카와를 보고 이와이즈미는 말 없이도 면박을 줬다. 누가 봐도 오버하지 말라는 눈짓이었다. 등교 첫날부터 투닥거리기 싫었던 오이카와는 ‘아직 아침 저녁으로 매우 쌀쌀하단 말이야. ‘ 란 말은 속으로 묻어두고 입을 비죽였다.
교문 앞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을 때 택시 한 대가 오이카와의 앞에 멈춰 섰다. 감사 인사를 빼놓지 않고 내린 누군가는 바로 앞에 있던 오이카와와 마주쳤다. 첫 인상은… 예뻤다. 크고 또렸한 눈, 기다란 속눈썹, 오똑한 코, 높게 올려 묶은 포니테일, 그리고 스쳐갈 때 났던 은은한 섬유 유연제까지. 어느 것 하나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대놓고 쳐다본 탓일까,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황급히 시선을 거둔 오이카와는 첫 눈에 반했다는 걸 부정하며 빠르게 뛰는 제 심장을 진정 시키느라 혼났다. 어쩐지 열이 오르는 것 같은 볼을 쓸고는 ‘같은 반이면 좋겠다. ‘ 라고 생각했다.
“이와짱, 방금 택시에서 내린 애 봤어? 이런 게 첫 눈에 반한 기분인가.. “
“헛소리 하지 말고 빨리 들어가 쿠소카와. “
“정말.. 이와짱이 그러니까 연애를 못 하는 ㄱ, 아 아프잖아 ! “
아침부터 한 대 맞은 오이카와는 저를 때린 이와이즈미를 한 번 째려보고 교실 문을 열었다. 그렇게 들어간 교실에서 빈자리를 찾으려 두리번 거리다 아침에 만난 인연을 보았다.
“어, 아까 택시.. “
“어.. “ “안녕! 아까 교문 앞에서 봤잖아!! 같은 반이라니.. 혹시 우리 운명인가?! “
“뭐야. 같은 반이었어? 잘 됐다. 나 친구 없는데 친구할래? “
“당연하지!! 난 이케맨 오이카와, 옆은 이와짱! 생긴 건 좀 험악해도 착한 애야~ “
“ㅋㅋ 그게 뭐야. “
오이카와는 속으로 자신이 올해 최고의 럭키가이라고 생각했다. 이름은 (-). 들어보니 배구 경기 보는 걸 좋아한다고 저를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오이카와는 슬쩍 광대가 올라갔다. 카게야마의 플레이에 첫 눈에 반해 경기할 때면 꼬박꼬박 보러 왔다면서 경기장에서 길을 잃었었는데 카게야마가 도와줬던 인연으로 번호를 교환하고 아직까지 연락을 한다고 한다. 올라갔던 광대가 다시 내려갔다. 그 놈의 카게야마. 하필 다른 누구도 아닌 카게야마라니. 얘와의 연은 정말 지구 끝까지 따라올 운명인가 보다.
우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두 번이나 함께 보낼 동안 3학년이 되었다. (-)는 카게야마와 맨날 연락 했다. 그냥 소소한 잡담이라나. 오이카와는 (-)와 카게야마가 연락하는 걸 싫어했다. 자기같은 노력파 보다 뭐든 쉽게 해내는 천재 순둥남 카게야마한테 반할까 봐 걱정이 됐기 때문이었다. 오이카와도 (-)와 연락을 하고 싶어 하루에도 몇 번 씩 문자 메시지를 썼다 지웠지만 결국 2년을 같이 보내는 동안 한 번을 먼저 보내보지 못 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천재 세터 카게야마와 천재 스파이커 우시지마. 저를 짓누르는 두 천재의 활약이 확실히 더 두드러졌다. 늘 태연한 척 하던 오이카와도 조금씩 조급함이 들어났다. 안 하던 서브 미스를 두 번 연속 하고서야 잠깐 벤치로 빠지라는 감독의 말에 입술을 씹으며 코트 밖으로 나왔다. 조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이카와는 천재가 아니었다.
(-)는 배구부에 자주 놀러왔다. 한 번씩 이렇게 분위기가 다운될 때면 귀신같이 나타나 페이스를 되찾아 줬다.
“토오루, 네가 천재가 아니어서 다행이야. “
“그게 무슨 말이야? “
“노력하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거든. “
불가항력이었다. 너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붉어졌을 얼굴을 가리고 황급히 뒤를 돌았다. 얼굴이 홧홧한 게 너무도 잘 느껴졌다. 뒤이어 울컥하는 감정이 밀려와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고맙다고 해야 하는데. 너는 나를 너무 잘 알았다. 말 없이 내 등만 토닥였다. 19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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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바죠사이와 카라스노의 경기 날이었다. (-)도 와서 응원해 주겠다고 했다. 사실 오이카와는 (-)가 오지 않길 조금은 빌었다. 멋있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다. 전 날 두 천재를 멋지게 이겨달라는 (-)에 자신있게 이겨 전국 대회에 갈 거라 했지만 오이카와는 두 천재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런 오이카와의 불안함을 읽었는지 벤치까지 내려와 응원해 주고 간 (-)였다. 오이카와에게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카라스노와의 경기가 끝났다. 결과는 패였다. 오이카와는 완벽했다. 다만 상대는 천재 세터라는 것이다. 고등학교 마지막 경기를 보면서 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경기를 마치고 나오면서 제일 먼저 눈에 띈 (-). 카게야마를 먼저 발견한 건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카게야마의 어깨를 툭툭 치며 멋있었다는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카게야마는 쑥쓰러운 듯 뒷 머리를 정리하며 귀를 붉히고 있었다. ‘아.. ‘ 오이카와는 가슴께가 저릿한 느낌을 받았다.
오이카와와 (-)는 친구이다. 좋아하는 감정으로 욕심을 내면 안 되는 관계라는 뜻이다. 오이카와는 친구의 뜻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눌러둔 마음을 철저하게 티 내지 않아야 한다. 이 관계를 제 손으로 파괴하고 싶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지금 (-)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보는 게 두려웠다. 저에게 한 번도 보지 못 했던 표정을 보여주고 있을까 봐 겁이 났다.
“오이카와 선배! 멋있었어요!! “
“응원해 줘서 고마워~!! “
제일 먼저 받고싶었던 너의 격려를 뒤로한 채 경기장을 나왔다. 모두가 노력한 경기의 결과가 좋지 않아서인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내가 경기장을 나가는 순간까지 너는 나를 봐주지 않았다.
-오이카와 어디야? -
-너 찾으러 왔는데 토비오를 만나는 바람에. -
-지금 버스에 짐 싣고 있어. 이쪽으로 올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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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토오루, 수고했어!! 제일 멋있더라~ “
“거짓말. 아까 토비오군에게 멋있다고 하는 거 다 봤거든요~ “
“헉. 봤어..? 아 근데 나 응원할 때 땀 많이 흘렸는데 혹시 냄새가 나진 않았겠지..? “
“… 감독님께 말씀드렸어. 배구부 버스 같이 타고 가자. “
“헐. 역시. 이런 게 주장 친구의 특권인가? “
맞아, 우린 친구지. 욕심내지 마 오이카와. 싱글벙글 웃으면 버스에 오르는 너를 보고 애써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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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뒤로는 죽어라 배구만 했다. 노력을 넘어선 나의 모습을, 나의 배구를 보여주고 싶었다. 동경하는 선수가 있는 아르헨티나로 가기 위해 매일 같이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리고 졸업이 다가왔다. 점점 어린 티를 벗어내는지 하루하루 더 예뻐지는 넌 내가 너의 친구라는 걸 점점 후회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정말 친구만으로도 좋아서 날아갈 듯 했었다. 하지만 사람은 간사한 동물이다. 마음 한 켠에 항상 친구보다 더 나아간 관계를 원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꾸역꾸역 누르고 있기를 자그마치 2년 반. 큰일이다. 자꾸만 새어 나오려고 한다. 요즘은 네가 날 보기만 해도 표정 관리가 안 됐다.
올해의 첫 눈이 내리던 날 결국 너를 불러내 버렸다. 네가 내 이름을 부르며 웃을 때 턱 끝까지 차올랐던 그 말을 전하려고. 그렇게 너를 기다렸고, 한껏 힘을 줘 꾸민 네가 나왔다. 넋 놓고 보다 문뜩 떠올랐다. 잠깐이면 된다고 불러낸 네가 나를 만난다고 이렇게 꾸밀 리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가장 듣기 싫었던 이름이 나왔다. 좀 이따 카게야마와 약속이 있다고 한다.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툭 치면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눈시울이 붉어진 나를 너는 의아해 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땠다.
“(-). 사실 내가.. “
떨리는 눈으로 너를 봤다. 그리고 후회했다. 너는 정색하고 있다. 끝까지 누르고 갔어야 했다. 말하지 않았어도 내가 카게야마에게 느끼는 감정이 어땠는지 혼자 깨달은 네가 지금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황급히 주제를 바꿨다. 아르헨티나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 그럴 일은 없겠지만, 네가 가지 말라고 하면 나는 분명 갈 수 없었을 테니까. 또, 너무 쉽게 보내줄까 봐. 말하지 않았던 그 소식을. 정색하고 있던 표정이 이제는 놀란 표정이 되었다. 내가 고백하려던 방금의 실수는 조금 모면한 것 같았다. 너는 내가 해낼 줄 알았다며 내 행복을 빌었다.
졸업하기 전 마지막 파티를 하기로 했다. 지난 3년간의 해프닝을 얘기하며 웃었다. 주제가 다 떨어질 쯤 게임을 하고있던 내게 너는 물었다.
“토오루, 우린 친구지?”
“… 왜 당연한 걸 물어 (-)짱? 설마 우리 친구 아니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
친구라는 말이 이렇게 잔인할 수가 없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너랑 친구 같은 거 하지 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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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졸업식 날이 되었다. 사실 실감이 안 나 그다지 슬프진 않았다. 앞으로 몇 년이 될지 모르는 너와의 이별이 못 견디게 더 슬펐다. 너는 오늘도 예뻤다. 우는 모습도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런 너는 카게야마가 주는 꽃다발을 받으며 자켓의 두 번째 단추를 카게야마에게 주었다. 나도 모르게 너의 표정을 봐버렸다. 이래서 보기 싫었다. 내가 처음 보는 너의 표정. 사랑에 빠진 두 눈. 잔뜩 떨리는 목소리. 나와 사진을 찍으며 너는 또 잔인한 말을 내게 뱉었다.
“우린 평생 친구지 ? 아르헨티나 가서도 나 잊으면 안돼?! “
내가 너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당연하지 (-)짱. 울지 마, 못생겨졌잖아!!"
그렇게 나는 아르헨티나로, 너는 카게야마의 곁으로. 우리는 서로의 안녕을 빌고, 마치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운명인 것 마냥 각자의 길로 떠났다. 아직 이 길었던 짝사랑을 끝내진 못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하지 못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