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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가 졸업을 한대요

 

 

w. 미깡(@mikang_11)

내 나이 한창 내신 챙기기 바쁜 낭랑 18세. 하지만 나는 사랑을 하느라 바쁘다. 그것도 짝사랑을.그 사람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펑하고 터질 듯이 떨리고 얼굴이 뜨겁게 붉어지고 아무일도 없는데 부끄럽다. 짝사랑 상대는 나보다 한 학년 선배 사쿠사 키요오미. 고3을 짝사랑하면 방해 되는 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아마 선배는 진로에 대한 고민은 없을 거다. 그야 구단에서 선배를 스카웃하러 직접 오기도 했는 걸. 공부 안 해도 앞날이 정해져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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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그럴 줄 알았는데...

 

​- 대학 갈 건데. 

- 네???왜요?? 그 뭐냐... 구단은 안 들어가게요?

- 별개야.

- 그럼 수능 볼 거예요??

- 어. 그니까 귀찮게 하지 말고 너도 공부하러 가.

 

​하... 내가 이렇게 선배를 졸졸 따라다닌 이유도 구단의 스카웃 때문이었다. 인맥 늘릴려는 그런 추잡한 목적이 아니고 스카웃 받았으면 공부 할 필요가 없으니까! 성적이 바닥이어도 배구를 잘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리고 이미 잘하잖아. 그것도 존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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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배를 처음 만난 건 입학식 때다. 나는 타지에 있는 이타치야마에 입학했기 때문에 주위 시설은 물론 학교 내부 지리도 몰랐다. 10의 100 확률로 길치인 나는 길을 잃을 게 뻔했고... 응. 예상대로 잃었다. 다행히 학교까지는 잘 찾아갔는데 입학식을 진행하는 강당을 못 찼고 복도를 맴돌기만 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려 했지만 1학년만 입학식인가... 2, 3학년들도 개학식이었기에 복도는 조용했다. 타지인 것도 모자라 1지망에 붙은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이타치야마에 왔는데 길까지 잃다니. 서러움에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고였다. 고인 눈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지려는 그때 눈물 틈으로 길쭉한 인영이 보였고 고민도 없이 달려가 붙잡았다. 그 사람이 사쿠사 키요오미였다.

 

​- 저기...! 

-  놔.

- 네?

- 손 놓으라...

 

​선배는 눈물이 고여있던 나의 눈과 마주치자 말을 말았다. 아마 손을 놓으라고 말하려고 했었겠지. 첫만남부터 선배의 약점이 눈물이란 것을 알았다. 아무튼 선배는 얼굴을 살짝 찡그리고는 왜 불렀냐고 물었고 나는 길을 잃었다고 답했다. 그에 선배는 한숨을 짧게 쉬고 " 아래 교무실로 가서 물어봐. " 귀찮다는 듯이 말을 했었는데 이게 또 나의 마음을 울렸다니까... 고여있던 눈물이 또르륵 흐르다 못해 쭈그려 앉아 엉엉 울었다. 길 좀 물어볼 수 있지 않냐, 여기 학생들은 그쪽처럼 싸가지가 없냐고. ... 이런 말도 했었던 것 같기도. 약점인 걸 한 번 더 알려 주려는지 주저 앉아 우는 나에 당황을 타는 선배였다. " 하... 일어나. " 하고 나를 일으켜주고 따라오라는 말과 함께 앞서 걸어갔다. 눈물을 닦고 선배의 뒤를 따랐다. 아니... 근데 존나 잘생겼네. 키도 겁나 커!

 

- 저기 이름이 뭐예요?

- 사쿠사.

- 여자친구는 있어요?

- 그딴 걸 왜 물어.

- 그럼 남자친구?

- ...하.

- 아니 그쪽 얼굴이면 남녀노소 빠질 얼굴이니까 그래요.

- 조용히 해.

- 없다는 거네요~.

 

​이게... 첫만남이었다. 나는 이날 이후로 선배의 뒤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다. 솔직히 금사빠라 금방 맘이 식을 줄 알았는데 식기는 개뿔. 1년하고도 반년이다. 사쿠사 키요오미 하나만 바라본 날이 2년이 다 되간다고. 그렇다면 가망은 있냐? 내가 상대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이 없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씨발... 없는 것 같아. 선배는 이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의 연락을 먼저 준 적이 없다. 매일 아침 잘 잤냐는 내 물음으로 연락을 시작한다. 게다가 앞서 말했 듯이 공부를 해야 한단다... 나의 심각한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 지 앞에서 나를 무시까고 공부하는 선배다. 근데...

 

선배. 아까도 그 문제 아니었어요?

... 조용히 해.

 

하 존나 귀엽다... 당장 두달 뒤가 수능인 선배 앞에서 이러는 거 양심 안 찔리는 이유가 있다니까. 아, 곧 수능... 그러니까 곧 졸업인 선배 때문에 고민이 하나 생겼다. 선배가 졸업하고 대학을 가면 나는 어떡해? 선배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냐고... 사실 이 고민은 한참 전부터 선배한테 털어 놨었다. 뭐 투정부렸다고 하는 게 맞지만. 졸업 안 하면 안 되냐고, 내 볼 한 번 때리고 유급하라고 등등 내가 들어도 개소리인 말들을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건 대답은커녕 싸늘한 선배의 시선이었다. 그래서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짜내서 따라다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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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그래. 차라리 고민하던 때가 좋았다. 수능이 끝나 졸업식을 앞둔 지금은 현실을 부정하거든... 까놓고 말하면 선배 얼굴을 볼 때마다 울컥 거린다. 내가 그럴 때마다 선배는 한숨을 푹 쉬고 가지고 다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준다. 언제는 닿지 말라고 했으면서.

 

- 진짜 못 다닐 것 같은데...

- 열심히 다녀. 대학 안 갈 거야?

- 그말이 아니잖아요.

- ... 보고 싶으면 대학 따라오던가.

 

...뭐?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야. 믿을 수 없는 선배의 말에 다시 한 번 말해달라고 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그렇다. 먹금이다. 아... 미치겠네! 왜 귀가 빨개지냐고!! 심지어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 때문에 히터가 빵빵한 교실인데 말이야.

 

​드디어 바라지 않고 바라지 않던 날이 왔다. 당사자들은 신나 죽는 졸업식. 부럽네... 누구는 슬퍼 죽겠는데. 오늘도 다른 날과 다르지 않게 1년 늦게 태어난 나를 탓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쩌면 오늘이 이번 생의 선배와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으니까 예뻐 보이고 싶어서 일찍 준비를 시작했다. 씻으면서 알게 된 건데 나 눈물 적은 줄 알았는데 많더라... 씻으면서 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울었어. 눈 부우면 안 되는데... 씻고 나와 혹시 몰라 어제 얼려둔 차가운 숟가락으로 부운 눈 두덩이에 꾹꾹 눌러 붓기를 빼려 애썼다. 

 

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았던 화장이었다. 언제 한 번 학교에 하고 간 적이 있는데 선배가 안 하는 게 낫다고 해서 그 이후로는 안 했었거든. 근데... 그건 내가 봐도 아니다. 쿠션을 찍어 바르고 연한 섀도우도 눈에 깔아주고 속눈썹도 바짝 올려 마스카라로 고정했다. 마지막으로 겨울이라 건조한 입술에 촉촉한 립스틱을 연하게 올렸다. 고데기까지 끝내고 시간을 보니 11시 30분. 졸업식이 1시 시작이니까 역 가는 길에 꽃을 사가기 넉넉한 시간이다. 집을 나서기 전에 진하니 않은 은은한 향수도 두어번 뿌리고 선배한테 ' 오늘 졸업식 가요 ' 연락을 하고 집을 나섰다.

 

으으... 완전 춥네. 차가운 바람에 얼어버릴 것 같은 얼굴을 목도리 안으로 가리고 꽃집으로 향했다. 

 

딸랑-

 

- 어서오세요~

- 나와있는 꽃다발 있나요?

- 누구한테 드리려고요? 남자친구?

- 그... 남자친구는 아니고...

- 혹시 짝사랑?

- ...네. 졸업식이 거든요.

- 아~ 그럼 이 꽃 추천 드려요. 이름은 물망초, 꽃말은 ' 나를 잊지 마세요 '. 

 

​푸른 빛이 돌면서 보라 빛도 은은하게 도는 꽃이었다. 꽃집 주인은 물망초를 메인으로 다른 꽃들도 꽃아 만든 꽃다발을 나에게 건넸다. 그 꽃다발을 사고 나오니 정말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는 것이 느껴졌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이 짝사랑을 끝내야겠다고.

 

덜컹 거리는 전철에 올라타 바깥을 보면서 가니까 지난 기억들이 떠오른다. 쉬는 시간마다 반을 찾아오면 찌푸리면서 걸어 나오던 선배의 모습, 내가 장난을 치면 무시하다가도 가끔 웃던 선배의 모습, 아픈데 안 아픈 척 선배한테 찾아왔다가 한소리 들으면서 보건실로 데려가던 선배의 뒷모습. ... 진짜 좋아하는데. 

 

도착한 학교 정문에는 졸업하는 학생들의 가족, 친구, 후배들로 가득했다. 수많은 인파를 뚫고 들어가기 전에 선배한테 보내놨던 연락을 확인 해봤는데 1은 사라져 있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 뭐야. 졸업식도 오지 말라는 거야...? 나 빼고 화목한 사람들 속에서 혼자 울음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사람들 속에서 가만히 서서 울음을 참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나를 밀치고 갔다. 그에 중심을 잃고 넘어지려고 했던 그때 누군가 나의 팔뚝을 잡아 넘어지는 걸 막아줬다. 고맙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쪽팔림과 서러움에 하도 울어서 나올 것도 없는 줄 알았던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악 물고 참으려 해봤지만 소용 없었고 결국에는 고개를 숙인채로 감사의 말을 건넸다. 그러고서 들려온 목소리는 내가 너무 좋아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미운 선배의 목소리가 틀림 없었다. 2년 가까이 매일매일을 듣고 지냈으니까. 

 

- 처음 만났을 때도 울더니 달라진 게 없네.

- ... 놔요.

- 울보. 

- ... 내가 누구 때문에 우는데!

- 눈물 좀 아끼라고. 이제 못 닦아주니까.

 

너무 잔인한 말 아닌가. 다시는 안 볼 사이면 잡아주지 말던가. 울지 말라고 하지 말던가. 너랑 나는 끝이라는 걸 뇌 속에 박히게 해주려는 건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 하기 싫었다.

 

​- 뭔 상관인데요?

- 뭐?

- 오늘 이후로 나 보지도 않을 거면서 이러는 이유가 뭐냐고. 졸졸 따라다닐 때는 정 하나 안 주더니 울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뭐야? 그때처럼 교무실 가라고 했던 그때처럼... 그냥 ... 넘어지든 말든 그냥! 무시했으면 됐잖아!

 

말하면서 격해진 감정 때문인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시선을 신경 쓸 여유 같은 건 없었고 내 눈에 오로지 선배만을 담았다. 선배의 까만 눈동자에도 나 하나만 비췄다. 선배는 한숨을 짧게 쉬더니 내 손목을 잡고 학교 뒷편으로 데려갔다. 가면서 놓으라고 소리치며 팔을 빼내려 했지만 그럴 수록 더 세게 손목을 잡아오는 선배에 포기했다. 하지만 입으로는 쉬지 않고 터질 때로 터진 감정이 시키는 말을 내뱉었다. 

 

- 저한테 왜 이래요 진짜! 이제 마음도 정리해야하는데!!

- 왜 해.

- 그럼 이제 못 보는 선배 좋아하면서 감정 낭비 하라고요?

- 누가 너 안 본대? 물어보지도 않고 혼자서 답 내리지 마. 

- ... 뭐라고요?

- 너 계속 볼 거라고. 근데 대학 붙으면. 그러니까 일년만 참아줘. 서로 성인 돼서 만나자.

 

선배는 믿기 힘든 말을 하면서 우는 나의 뺨을 살포시 잡고 눈물을 닦아줬다. 진짜... 진짜죠? 약속해요. 말을 무르면 안 되니까... 약속하자고 했다. 선배는 뭐가 재밌는지 피식 웃었다.

내가 선배의 모습 중 가장 좋아하는 모습은 웃는 모습이다. 무표정으로 다니는 선배가 가끔씩 웃어주면 기분이 얼마나 좋은데... 사촌인 코모리 선배한테도 웃어 준 걸 본적이 없다. 

 

선배는 내가 좋아하는 그 얼굴을 하고 나한테 다가왔다. 지금 하는 건가? 드라마에서만 보던 키스를!?!!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뭐해. 변태야."라고 들리는 선배의 목소리에 눈을 뜰 수 없었다. 존나 쪽팔려서. 그때 타이밍 좋게 졸업식을 시작한다는 종이 울렸고 덕분에 나는 선배를 밀치고 앞서 걸어갔다. 

 

뒤에서 자꾸 피식 거리는 소리가 들려... 짜증나. 창피해! 쪽팔림에 달아오른 귀를 가리며 걸어가는데 선배가 나를 돌려세우고는 입을 맞췄다. 1초. 그 짧은 순간에 내 입술과 선배의 입술이 겹쳤었다. 바르고 나온 촉촉한  립스틱 때문에 아니... 덕분에 두 입술이 끈적하게 떼어졌다.

 

- 다음은 다음 졸업식 때.

 

엄마... 어떡하지... 첫사랑이 생긴 것 같아. 그리고 그 첫사랑이랑 첫키스도 했어. 나 선배 못 잊을 것 같아. 짧은 입 맞춤 후에 혼자 멍~ 때리고 있으니까 선배가 내 손에 있던 꽃다발을 가져갔다. 그리고서는 하는 말이 

- 내가 널 왜 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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