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w. 매루(@maerurung)
"야, 맞다니까? 오사무가 너 좋아한다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시큰둥한 내 옆에서 리카가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근래 부쩍 오사무와 붙어있는 모습을 보고는 매일 내 옆에서 오사무가 너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확신한 눈빛으로 말했다. 내가 시큰둥해하면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를 좋아하는데 떨리지 않냐 며 입을 댓 발 내밀었다. 오사무도 꽤 고생이겠다.
"응? 맨날 너 쳐다보고 있고, 맨날 너한테 초코우유 갖다 바치고! 걔가 그렇게 티 내는데 그 초코우유를 매번 나한테 주는 너를 이해할 수가 없어. 너도 걔 좋아하면서."
"얼른 책이나 챙겨. 과학실 가게."
그 말에 허둥지둥 교과서와 필통을 챙기는 리카를 지켜봤다. 먼저 나가고 있으면 뒤따라오던 리카가 아야! 소리를 내며 무릎을 매만졌다. 한 번 쳐다보고 다시 걸음을 옮기면 리카가 뒤에서 같이 가자고 소리를 쳤다. 리카의 품엔 아까 오사무가 주었던 초코우유가 있었다.
***
오사무와는 어릴 적부터 친구였다. 천둥벌거숭이 시절부터 늘 우다다 뛰어다니며 사고를 치고 같이 벌을 섰다. 초등학생 땐 쌍둥이네에서 자기로 한 날 자다 깼는데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었다. 혼자 가려니 아까 봤던 무서운 영화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무서움에 옆에 있는 쌍둥이 중 한 명을 깨우려고 손을 뻗었는데 온기가 없었다. 이상해서 눈을 떠보니 옆엔 오사무만 있고 아츠무는 없었다. 오사무를 깨워 화장실부터 해결한 다음 아츠무를 찾으러 다니는데 아까 아츠무가 갖고 놀다 치우지 않은 장난감을 오사무가 밟아 오사무가 소리를 질렀다. 오사무에 의지한 채 따라가고 있던 나도 소리를 꽥 질렀고,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부리나케 달려 나오셨다. 횡설수설하며 말하는 우리에 두 분은 못 알아들으시는 듯했는데 아주머니와 아저씨 뒤로 막 잠이 깬 모양새의 아츠무가 뭐가 이리 시끄럽냐고 다가왔다.
"아츠무! 너 어디 있었어?!"
"무시버서 어매 옆에 있었제…."
"야! 너 찾아다녔잖아!"
한바탕의 소동이 끝난 다음 날 아침, 나와 오사무는 무섭다고 엄마에게로 도망가버린 아츠무를 놀려댔다.
"아츠무 겁쟁이."
"지 무십다고 어매 옆으로 호딱 가뿟네."
"너거 진짜 고마해라…."
아침밥을 먹으며 쉴 새 없이 아츠무를 놀려대면 결국 아츠무가 버럭 화를 냈다. 아츠무의 버럭 소리에 아주머니는 아츠무를 혼내셨고 나와 오사무는 키득키득 웃었다. 지금까지도 이 얘기로 아츠무를 놀려대면 아츠무는 얼굴이 시뻘게져 버럭버럭 화를 냈다.
또 하루는 아츠무 몰래 둘이 타임캡슐을 만들어 집 뒷산 공터에 타임캡슐을 숨기자고 올라갔었다. 타임캡슐을 묻고 집에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비가 내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급한대로 공터에 있던 미끄럼틀 아래로 들어간 다음 비가 그치면 내려가기로 했다. 하지만 비는 그칠 생각을 안 했고, 너무 추워 그만 잠이 들었다. 깼을 땐 병원 천장과 울고 있는 우리의 부모님이 보였다. 저체온증이 심해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묻어놓은 타임캡슐이 비에 쓸려갈까 걱정됐다. 낫자마자 타임캡슐을 보러 갔더니 오사무도 있었다.
"니도 걱정돼가 왔나?"
"응. 오사무도?"
"당연하제. 보이까 멀쩡하데."
"그래? 다행이다."
안도의 숨을 뱉고 타임캡슐을 지키기 위해 묻어둔 자리 위에서 오사무와 또 함께 놀았다. 모래 장난도 치고 비가 오면 우산도 펼쳐놓았다. 오사무가 배구에 전념하기 시작한 뒤론 혼자 지켰지만.
중학교는 쌍둥이들과 떨어졌다. 나는 근처의 여자중학교, 오사무와 아츠무는 야코 중학교에 들어갔다. 중학교에 들어와 나는 성적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여기서 리카를 만났다. 리카는 정말 다 가진 사람 같았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성적이 높게 나왔고 나는 그런 리카를 이기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노력하고 노력해도 리카를 이길 수 없다는 게 분하고 슬퍼 리카를 멀리하려 했는데 수많은 과정에서 리카와는 절친이 되었다.
그런 리카와 이나리자키에 진학하며 다시 삐걱거렸다. 정확히는 나 혼자 삐걱거렸다. 쌍둥이들과 함께 있는 단체 연락망에서 고등학교 얘기가 나왔는데 쌍둥이들이 이나리자키에 진학하게 된 걸 알았다. 어, 나돈데. 치자마자 물음표와 진짜냐는 말로 도배됐다. 같이 다니자고 연락을 하던 중 리카가 생각났다.
내 친구도 이나리 다닐 건데, 같이 다녀도 돼?
아츠무
? 니 우리 말고 친구도 있나?
내가 너냐.
아츠무
와, 니...
아츠무랑 주거니 받거니 떠드는데 가만히 보던 오사무가 한 마디 했다.
오사무
여 방에 가도 초대해라. 미리 말 쫌 나눠보면 더 좋겄제. 1
*
리카까지 함께 넷이 붙어 다니던 어느 날, 오사무가 둘이 보자고 연락을 남겼다. 이전에도 오사무와 둘이 만난 적이 있어 평소처럼 오사무가 아는 맛집에서 밥을 먹고 카페에 둘이 마주 앉았다. 케이크를 먹던 오사무는 아차 싶은 얼굴로 포크를 내려놨다.
"뭐야, 어디 아파? 왜 더 안 먹어?"
"내 니한테 할 말이 있다."
"뭔데 그렇게 폼을 잡고 말해."
꽤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오사무에 픽 웃으며 케이크로 손을 뻗었다.
"리카랑 잘 되게 좀 도와도."
그러기도 잠시 뒤이어 들린 오사무의 말에 들고 있던 포크를 떨어뜨렸다. 순간 카페의 소음이 싹 사라졌다. 오사무가 리카랑 잘되게 해달라는 그 말이 그렇게도 충격적이었나보다. 오사무가 뭐라 말을 하는데 하나도 안 들린다.
"(-)!"
"ㅇ, 어."
"개않냐고."
"…응. 괜찮아."
"…그래, 그면 내 도와줄 수 있나."
바로 그렇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왜? 왜긴. 내가 오사무를 좋아하니까지.
"야 니 진짜 개않은 거 맞나?"
"…응, 도와줄게."
"진짜가!"
같이 타임캡슐을 만들었던 그 날처럼 반짝이는 눈을 한 오사무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을 마주하기가 괴로워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거 때문에 만나자고 한 거야?"
"음, 뭐…."
"…용건 끝났으면 나 먼저 들어가 볼게."
"니 개않은 거 아이제."
"괜찮아. 집에 할 일이 있어서 그래. 학교에서 봐."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오사무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도망치듯 카페를 빠져나왔다. 앞으로 오사무의 얼굴을 보기 힘들 것 같았다.
***
보기 힘들 것 같아도 오사무를 안 보는 일은 없었다. 도와달라 한 뒤 오사무는 수시로 나를 불러냈다. 오사무의 호출에 한숨을 쉬면서도 오사무가 불러내는 카페로 찾아갔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제 몫의 망고 스무디와 내가 좋아하는 딸기 스무디를 시켜놓고 손짓을 했다. 오사무의 앞에 털썩 앉아 내가 스무디를 한 모금 들이키면 내게 리카의 취향에 대해 물었다. 남자 취향이나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것 등등. 말은 그렇게 해도 안 도와줄 수도 있지만 미련한 나는 술술 불었다.
"키 크고 다정한 사람, 대체로 다 잘 먹는데 초코우유 일주일에 세 번은 챙겨 먹고…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고. 밖에 나가서 노는 걸 제일 좋아하는 것 같아."
"맞나, 그면 스포츠는 안 좋아할라나?"
"글쎄, 너희랑 친해지고 나서는 배구는 좀 재밌어하던데."
"맞나."
배구는 재밌어한다는 말에 오사무가 푸스스 웃었다. 저 웃음은 나를 향한 웃음이 아닌데 주책 맞게 내 심장이 쿵쿵 대답했다.
궁금한 게 생기면 오사무는 늘 나를 불러냈고, 난 오사무가 시켜놓은 음료를 쪽쪽 빨며 대답해주다가 오사무의 질문이 끝나면 카페를 나왔다. 오사무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친구여서 그런 걸까, 리카와 내가 둘이 놀고 있을 때 리카에게 번호를 묻는 이가 다가오면 내가 선수를 쳤다.
"얘 애인 있어요."
"엑?!"
"아…, 죄송합니다."
리카의 앞을 가로막고 남자를 쳐다보며 말하면 리카와 남자가 당황해했다. 남자가 멀어지면 리카는 내게 왜 그랬냐며 툴툴 댔다.
"너 그럼 저 사람한테 번호 주고 싶어?"
"음… 그건 아니지만."
"너 취향 아닌 거 같아서 내가 선수 쳤지."
사실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지만…. 리카는 내 속내도 모르고 툴툴대던 걸 멈추고 나를 끌어안았다. 애써 덤덤하게 말했지만 속이 쓰렸다.
그 날 우리는 카페에서 서로의 이상형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리카의 이상형은 워낙 많이 들어 나까지 외울 정도였는데 나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나에게 오사무말고 이상형이 따로 있을 리 없으니까…. 때문에 리카는 내 이상형에 대해 궁금해했다.
"말해봐, 말해봐!"
"글쎄…. 키 180 넘고 다정하고 잘생겼고… 요리 잘하고, 운동 잘하는?"
"헐, 너무 완벽한 사람 아냐?"
"…그런가?"
이상형을 읊고 아차 싶었다. 너무 티가 나면 안 되는데 이상형 하면 나도 모르게 오사무가 떠올라 오사무의 특징을 읊었다. 영 애매한 내 반응에 리카는 눈을 흘기며 쳐다보다 대뜸 샐쭉 웃었다.
"너 솔직히 말해봐. 그거 지금 누구 생각하고 말한 거 아니야?"
"무슨!..."
"맞지? 맞지? 너 지금 누구 좋아해?"
"……"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리고 있으면 리카가 옆자리로 와 앉았다. 귀가 빨갛다며 음흉한 웃음을 지은 리카가 자꾸 들이댔다.
"빨리 말해봐. 응?!"
"아, 아니래두."
"아닌데… 너무 상세한데?"
"……"
"키가 180이 넘고, 다정하고 잘생겼고… 요리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사람이 너 옆에…."
으음~ 소리를 내며 고민하던 리카가 손바닥에 주먹을 '탁' 치더니 욕조의 물이 넘친 걸 본 아르키메데스 같은 표정을 지었다.
"설마 미야 쌍둥이?!"
"……"
"다정하면 아츠무는 아닐 테니… 오사무?"
"……"
아니라고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좋아하는 걸 부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말 없이 아이스 초코를 빨아들이면 리카가 활짝 웃었다.
"맞네! 오사무네! 와, 걔도 너 좋아하는 거 같던데 얼른 고백해버려!"
"아, 무슨. 아냐아냐.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말고 다른 얘기하자."
얼굴이 벌게져 손을 휘휘 저으면 리카가 내가 속아준다~ 같은 표정을 지으며 자기 자리로 가 앉았다. 그 뒤로 리카는 오사무가 내게 올 때마다 백 퍼센트라며, 얼른 고백하라고 부추겼다. 그 오사무는 내가 아닌 리카를 보러 오는 건데.
*
사건은 오사무가 리카에게 고백했을 때 터졌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기 전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저 멀리 교실 앞 복도에서 오사무와 리카가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츠무와 리카도 아니고 리카와 오사무가 다투는 일은 거의 없어서 의아했다.
"뭐? 너 (-)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아이다. 낸 니 좋아했는데."
"아니, 매번 네가 (-)한테 선물 주고 어? 막 쳐다보는 눈빛도 그렇고, (-) 번호 물어보는 애들 있으면 안 알려주고 그랬잖아!"
"그거 다 니 주려던 거고 니 쳐다본 거였다. (-) 번호는 예전에 가한테 물보니까는 주지 말라 캐서 안 준 거 뿐이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들리는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 왜 내 얘기가 나오는지 모르겠고, 리카가 왠지 하면 안 되는 말을 할 것 같은 촉이 왔다. 촉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나쁜 기운이 들면 백발백중 들어맞았다.
"…야, 그럼… 그럼 (-)은 어떡해. 걔가 널 얼마나 좋아했는데…."
"…그게 므슨…, ...(-)."
"! 아…! (-)!"
리카의 말을 들은 오사무의 눈동자가 요동치던 중 두 사람에게 달려가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오사무의 말에 리카도 뒤를 돌아 나를 쳐다보더니 당황한 얼굴이었다. 아… 나는 지금 어떤 얼굴일까. 소란스러운 복도에 아이들이 하나둘 쳐다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여길 쳐다보고 웅성대는 소리에 다리가 덜덜 떨렸다. 백 미터 달리기를 한 사람처럼 호흡이 격해지고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들렸다. 리카와 오사무가 다가오는데 쫓아오지 말라고 복도가 찢어져라 소리를 지르고 도망쳤다.
내가 아무리 달리고 도망쳐도 학교 안이다. 앞을 보지 않고 달렸는데 체육관 앞이었다. 늘 쌍둥이 때문에 찾아갔던 탓인지 걸음이 익숙한 곳으로 간 것 같다. 이런 건 익숙하지 않아도 되는데, 억울함에 걸음이 멈췄다. 발을 질질 끌며 체육관을 배회하는데 누가 어깨를 붙잡았다.
"가시나, 뭐 이래 빠르노."
"놔!"
"얘기 쫌 하자."
"너랑 할 말 없어."
"와 없는데. 하고 싶은 말 잔뜩 있겄제."
"아니라니까?!"
"고집 부리지 말고 쫌."
오사무를 노려보는데 가끔 아츠무를 쳐다볼 때나 보여주는 굳은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심장이 저릿했다.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오사무와 마주 선 채 내 어깨에 올라온 오사무의 손을 쳐냈다. 오사무의 얼굴을 마주하기 힘들어 절로 인상이 써졌다.
"놔. 안 도망갈 테니까."
"맞나."
"난 할 말 없어."
"낸 있다. 인제야 퍼즐이 좀 맞춰진다이가. 놀자 캤을 때 뚱한 표정 한 번도 안 보이던 니가 그 날 이후로는 불러낼 때마다 토라진 살찡이마냥 뚱한 얼굴 하고 있었는지. 니한테 몹쓸 짓 했네."
"……"
"내 좋아하는 사람더러 내를 도와달라 카고…"
오사무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기가 찬 지 허공을 보며 허- 웃었다. 도와달라는 말을 거절해도 되는데 거절도 안 하고 열심히 도와준 내 모습이 생각났다. 그런데 도와주면서도 표정은 숨기지 못했나보다. 둔한 오사무가 내 표정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면. 지금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후에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 같아 확실하게 하기로 했다.
"그래서?"
"어?"
"내가 널 좋아한다고 네가 내가 좋아지는 게 아니잖아. 너 리카 포기할 수 있어?"
"그거는…."
오사무가 말끝을 흐렸다. 암묵적인 거절의 의미였다. 예상은 했지만 아주 잠시나마 희망을 가진 내가 딱하게 느껴졌다.
"…그래,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그냥 말할게. 나 너 진짜 좋아해. 난 아직도 비가 오면 우리가 묻어뒀던 타임캡슐 위로 우산을 올려두러 가고, 네가 연락을 해오면 설레. 왜 부르는지 알면서도 부푼 마음을 안고 가보면 넌 리카에 대해서만 물었어. 리카는 뭘 좋아하고 어떤 남자를 좋아하고 어떤 걸 재밌어하고 싫어하고…."
"…그,"
"내 말 안 끝났어. 난 솔직히… 지금도 네가 날 붙잡았을 때 리카 말대로 나를 좋아했나? 하는 일말의 희망을 붙잡았는데…. 그냥 착각이었어. 진짜 바보다, 나도. 어떻게 그런 생각을…."
스스로가 쪽팔렸다. 그럼 대체 왜 나를 쫓아온 건지. 내가 좋아하던 카페 음료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불러낼 때마다 그 음료들을 시켜놓았는지. 몇 번 아니 한 번이라도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음료를 시켰더라면. 시야 가득 차오르던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렀다.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 하고 메이는 목을 가다듬었다.
"난 지금도 네가 나와 같은 마음이면 좋겠어. 네가 리카랑 사귀어도 혼자 여전히 마음을 키우고 있을 수도 있어. 너의 시선 끝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어. 오사무, 그래줄 수 있어서 나 붙잡은 거야?"
"……"
생각이 많은 듯한 오사무의 눈, 오사무가 고개를 저었다. 심장이 또 한 번 저렸다. 부정의 대답을 들을 거란 걸 알고 있었음에도 속상했다. 더 이상 오사무를 쳐다볼 수 없어 눈을 감으니 눈물들이 볼을 따라 후드득 떨어진다.
"그럼 가. 이제 여기서 네가 더 다가오면 우린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는 거야, 오사무. 난 너를 더더욱 포기할 수 없을 테고 넌 계속 불편해하다 앞으로 얼굴도 보지 못하게 될 거라고."
오사무도 괴로울 거야. 친구라고만 생각했던 내가 저를 좋아했고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고백했더니 친구가 좋아하는 사람을 어떻게 사귀냐며, 입장이 난처하겠지. 리카도 오사무와 만날 순 없을 거다. 잘 돌아가던 톱니바퀴가 나로 인해 틀어졌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다. 그러면 난 오사무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고 리카에게 오사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게끔 할 테다.
오사무는 한참을 서 있다가 돌아갔다. 멀어지는 오사무의 발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삼키다가 완전히 멀어진 것 같아지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주저앉은 나는 괜히 주변을 둘러봤다. 언제나와 같은 교내인데 같지 않다. 부 활동이 끝난 오사무와 같이 하교도 했는데 오늘부턴 못하겠지. 쌀쌀한 늦가을의 바람이, 매섭게 불던 겨울의 칼바람보다 더 시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