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은 태어나면 몸 어딘가에 100이나 1이 새겨져 있다. 숫자가 몸에 새겨진 채로 세상을 살아가다 파트너를 만나서 “아 저 사람이 나의 파트너구나” 라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몸에 새겨져 있던 숫자는 50으로 바뀐다. 이렇게 숫자가 50으로 바뀌면 그 이후로부터 자연스럽게 사귀게 되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 물론 나도 몸에 숫자가 새겨져있고. 손목 아랫부분에 숫자가 크지 않게 새겨져 있다. 솔직히 말해 난 영원히. 그러니까 죽을 때까지 파트너를 못 찾을 줄 알았지만, 찾았다. 바로 내 옆에 있는 이 커다란 녀석이 나의 연인이자 나의 파트너이다.
유성우
w. lily(@liliumlily_)
나의 연인이자 나의 파트너를 만난 것. 그니까 이 모든 것은 아마 그날 밤부터라고 생각한다. 그날 밤, 유성우가 무수히 많이 떨어진다고 하여 사람들이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밤. 그것은 언제 본 건지도 모를 한 폭의 그림 같았던. 한 없이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 날도 난 전처럼 똑같이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아,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나의 몸에 새겨져 있던 숫자가 하나 줄어들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학교가 끝나 집에 도착해서 방에 가방을 내려놓고 손을 씻으러 화장실을 갔다가 다시 방으로 와서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으려고 한 순간. 신경이 자꾸만 가 숫자가 새겨져있는 손목 아랫부분에 붙였던 밴드가 떼어져 바닥으로 떨어지던 순간. 난 100이었던 숫자가 99로 줄어있는 것을 보았다. 옷을 갈아입는 것도 까먹고 한참 동안 손목을 붙잡고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쳐다본 지 5분 정도 되었을 때 급하게 정신을 차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옷을 주워 곧바로 입었다. 그러곤 침대에 다이빙을 하였고, 또 한참동안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어디서 만난 거지? 학교에서 아님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사람은 이미 날 알고 있으려나?’ 이런 상념에 빠져 있는 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이미 내 주위 사람들은 파트너를 찾아 행복한 연애를 하고 있는 반면 난 그렇지 못하였다. 평생 만나지 못하고 혼자 살다 죽을 줄 알았지만. 이렇게 운명적인 갑작스러운 만남이 될 줄은 몰랐다. 게다가 난 나의 파트너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파트너는 어떻게 찾으란 건지도 모르겠다.
“파트너고 뭐고 아무 생각 하지 말자. 일단 자고 일어나서 더 생각해 보는 거야.”
한숨 자고 일어나니 개운해서 그런지 머리도 아까보다 더 잘 돌아가는 것 같았다.
띠링- 띠링-
가만히 있던 핸드폰이 울려서 봤더니 친구에게 연락이 와있었다.
-밤에 유성우 떨어진다는데 갈래?
“유성우가 떨어진다고? 그럼 당연히 가야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고 엄청 이쁠 텐데.”
자그맣게 혼잣말을 하면서 친구에게 간다는 답장을 했다.
-어, 갈래
-몇 시에 만나?
-어... 9시에 만나자 그때 잘 보일 것 같은데
-그래
9시 만남. 현재 시각 6시. 아직 3시간이라는 시간이 남았으니 준비할 시간은 넉넉하다. 좀 쉬다가 준비하고 나가야겠다.
...시간이 넉넉하다고 생각했지만 내 착각이었다. 시간이 부족한 걸 넘어 쫓겼다. 급하게 편한 옷에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핸드폰과 지갑을 챙겨 현관문을 지나 엘리베이터에 타 1층 버튼을 누르고 문이 완전히 닫히는 걸 보고 핸드폰 메신저 창을 켜 엄마에게 친구랑 유성우 보러 가 늦게 집에 들어갈 거란 연락만 남기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와 전화를 하다 친구의 다 도착해간다는 말을 듣자 난 조급해져 조금만 기다리란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달렸다. 그래도 만날 장소가 집에서 멀지 않은 장소라 약 5분 정도 달렸더니 친구와 엇비슷하게 만났다.
친구와 만나고 우리는 바로 유성우가 잘 보이는 신사로 갔다. 가는 동안 우리는 조용해지지 않게 이야기를 하였다. 이야기를 하면서 가서인지 생각보다 꽤 빠르게 도착했다. 현재 우린 신사로 갈 수 있는 계단 쪽에 도착하였고, 여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꽤 잘 보였다. 하지만 여기보다 위쪽이 더 잘 보일 것 같아서 계단 위로 올라가기로 했다. 한 30분쯤 계단을 타고 올라갔더니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아마 저 많은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자그맣게 웃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소리쳤다.
“유성우가 떨어진다!!!”
유성우가 떨어진다고. 사람들은 유성우가 떨어진다는 소리를 듣자 하늘을 쳐다봤다. 물론 우리도 하늘을 쳐다봤다. 난 하늘을 보며 언제 본 건지도 모를 한 폭의 그림 같은. 한 없이 아름다운 광경이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하늘을 보며 탄성을 내뱉기도, 사진을 찍기도, 동영상 촬영을 하기도. 사람들은 유성우가 무수히 떨어지는 지금을. 놓칠 수 없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는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성우가 다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씩 신사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리들도 사람들에 밀려 내려가던 중 무의식적으로 손목을 봤는데 숫자가 줄어있었다. 숫자가 줄어있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손목을 부여잡고 자세히 봤다. 잘못 본 것인 줄 알았는데 또 줄어있었다. 99에서 98로. 나는 숫자가 줄어든 것을 보고 어디에서 만난건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나에게 큰 목소리로 뭐하냐고 얼른 내려오라고 재촉하며 내 팔을 잡고 아래로 이끌었다. 친구에게 이끌려 내려가는 도중에도 어디에서 만난 건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다 내려오고 나서 친구는 나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왔고 그에 난 멍하니 “숫자가 줄어들었어...”라고 답했다. 터무니없는 나의 말에 친구는 잠시 말이 없더니 진짜냐고 누구인지 아냐고 난리를 쳤다. 당연히 누군지 모른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덧붙여 기필코 나의 파트너가 누구인지 찾아낼 거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친구와는 처음 만난 장소에서 헤어졌다.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도 여전히 ‘파트너는 누구일까’ 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였다. 숫자는 하나씩 줄어가고 파트너는 못 만난 지금 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분명 나와 잘 맞는 사람이겠지? 이건 아닐려나... 나랑 잘 안 맞아도 괜찮으니까, 키는 컸으면 좋겠다. 아니다. 목소리. 목소리가 좋았으면 좋겠다. 제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고 말했어도 딱히 상상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저 나의 이상형을 곧이곧대로 말한 것뿐이니까. 이런 생각을 하니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어졌다. 난 빨리 찾아낼 거라고 굳게 믿은 뒤 아파트 공동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 집 층수를 누르고 기다렸다. 3-5분 정도 지났을 때 문이 열렸고 난 바로 내린 뒤 현관문을 열고
“다녀왔습니다-”
라고 말한 후 화장실로 가 손을 씻고 아까 방에 급하게 갈아입는다고 내팽개친 옷들을 가지고 와 화장실 앞에 두고 옷을 벗은 후 씻으러 들어갔다. 개운하게 씻고 나온 후 옷을 입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서 소리 나게 대자로 누운 뒤 팔로 눈을 가린 상태에서 눈을 감고 한참동안 가만히 있었다. 오늘 일어났던 일들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을 가리고 있던 팔을 내리고 눈을 천천히 뜬 후 일어나 책상에 앉은 후 옆 선반에 꽂혀져 있는 안 쓰는 다이어리들 중 하나를 꺼내 오늘 있었던 일들의 이야기가 길어지지 않게 조금씩 요약해가면서 적어내려 갔다. 약 30분정도 지났을까 이야기는 거의 다 적어가 막바지에 이르렀고 조금만 더 쓰면 끝나간다. 거의 다 적었을 때 조금만 더 힘내자는 생각과 함께 빠르게 적었다.
[무조건 졸업하기 전에 파트너 만나서 죽을 때까지 같이 살 것이다.]
라는 문구를 마지막 줄에 쓰고 난 뒤 다이어리를 소리 나게 덮었다. 허리를 핀 후 손을 모은 뒤 끄응 이라는 소리와 함께 기지개를 폈다.
“아, 기지개라도 펴니까 살 것 같다.”
누가 들으면 아저씨냐고 할 법할 말을 혼잣말로 했다. 의자에서 일어나 방 불을 끄고 침대에 대자로 누웠다. 침대에 누운 뒤 핸드폰을 켜고 알람을 맞춘 후 잠에 들었다.
띠링- 띠링-
알람이 울렸고 신경질적으로 알람을 끄고 눈을 감고 있다가 헉하면서 일어났다. 왜냐하면 오늘은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학교 축제날이었기 때문이다. 침대에서 얼른 벗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세수와 양치를 하고 방에 들어와 전에 반에서 드레스 코드를 맞추자는 의견이 있었던 게 기억이 나, 옷장에서 화이트&블랙 톤의 옷을 꺼내 갈아입었다. 다 갈아입은 후엔 간단하게 화장을 하고 가방을 쌓다. 가방에는 머리끈, 머리핀, 화장품, 고데기, 지갑 등등 축제에 있어 필요한 물건들을 넣었다. 마지막으로 양말을 신고 핸드폰을 챙겨 문을 나섰다.
빠른 걸음으로 학교에 갔더니 반에는 친구들이 절반 정도 와있었다. 모두들 부스 꾸미기에 진심이었는지 열심히 꾸미고 있었다. 난 자연스럽게 반에 들어가 들고 온 가방을 책상에 올려놓고 가방에서 머리끈과 머리핀, 고데기를 꺼내들고 조금 더 본격적으로 꾸미기 시작했다. 고데기로 머리에 전체적으로 웨이브를 넣고 반 묶음 하기 쉽게 웨이브를 조금 더 넣고 머리끈으로 반 묶음을 한 뒤 머리핀으로 옆머리를 장식했다. 그리고 다시 전체적으로 고데기를 다 하고 친구들과 맞춘 스마일 꽃을 구부려 손목에 감고는 부스 꾸미기에 참여했다.
우리 반 부스 컨셉은 게임장이었다. 다트 던지기, 할리갈리, 노래 맞추기 등등 간단하지만 재밌게 할 수 있는 것들을 가져와 반에서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난 오전 타임이 아닌 오후 타임에 와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오전에 열려있는 부스들을 많이 참여해 즐길 심산으로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현재 모든 준비를 끝냈고 축제 시작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띵동댕동-
“아아- 지금부터 제 nn 회 후쿠로다니 학교 축제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든 학생 여러분들은 오늘 다치지 않게 즐겁게 즐기다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부디 행복한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안내 방송이 나오고 우린 힘차고 크게 “네!!”라고 대답을 하고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복도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여기저기에서 자기네 부스로 오라고 하는 외침이 한데 섞여 마치 시장에 온 느낌이었다. 난 지갑을 들고 친구들과 함께 돌아다니다가 아래층 반 중 한 반의 부스 컨셉은 메이드&집사인지 복장이 메이드와 집사 옷이었다. 우린 호기심이 피어나기도 하고 많이 돌아다닌 탓에 다리도 조금 아프고 해서 여기에 들렀다 가기로 했다. 난 들어가기 전에 슬쩍 반 팻말을 보았다. 반 팻말에는 2-6 이라고 적혀 있었다.
우린 반에 들어오자마자 앞에 서있던 분의 안내에 따라 비어있는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메뉴판을 받았다. 받은 메뉴판을 우리끼리 주고받으면서 마실 음료나 먹을 음식을 정하고 주문을 했다.
“여기 주문이요!”
주문은 가위바위보에서 진 내가 대표로 하게 되었다. 차분히 아주 차분히 주문할 것들을 말했다. 테이블에 오신 분은 집사 옷을 입고 오셨는데 한 손에는 주문표를 다른 한 손에는 볼펜을 들고 있었다. 내가 말하는 것을 받아 적고는
“주문 받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테이블에 있던 분이 가신 뒤 기다리는 동안 우리끼리 이야기를 했다. 30분 정도 기다리니 주문한 음료와 음식들이 차차 나오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조각 케이크가 나오고 나서 사진 찍기 편하게 테이블 세팅을 하고 마구 찍어댔다. 10장 정도 찍었을 때 그제서야 우린 먹기 시작했다. 맛있게 다 먹은 후 카운터로 보이는 곳으로 가 계산을 했다. 계산을 하고 나와 이곳저곳을 누비며 여러 부스 체험을 하고 핸드폰을 보니 이제 곧 오전 타임 친구들과 교대해야 할 시간이 다가와 반으로 얼른 달려갔다.
달려서 반으로 갔더니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하였다. 오전 타임 친구들과 바통 터치를 함과 동시에 목에 명찰을 걸었다. 점심시간 이후 다시 시작된 오후 타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부스로 들어왔고 우린 텐션 높게 맞이했다. 우리 반 부스 컨셉이 게임장이라서 그런지 학생들은 물론 선생님들까지 들어와선 게임을 즐기다 가시는데 간혹 가다 싸움이 날 때도 있었다. 마무리가 좋게 되서 다행이지 안 좋게 되었으면 상상하기도 싫어진다.
오후 타임을 맡은 지 약 한 시간이 다 되가는데 사람들이 빠질 기미가 안 보였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한산해졌을 때 자그맣게 한숨을 내뱉으며 구석에 비치되어 있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쭉 폈다. 다리를 쭉 펴고 쉬고 있을 때 옆에 친구가 슬그머니 와서는
“이제 두 시간 정도 남았어. 조금만 더 버텨.”
라고 말하고 쌩하니 가버렸다. 난 그런 가버리는 친구를 픽-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내며 멍하니 바라보았다. 멍하니 바라보는 도중 사람들이 다시 차례대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다시 한 번 맞이하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들이 들어와 정신이 없었던 찰나 손목을 보니 또 숫자가 줄어있었다. 어디에서 만난 건지 감이 안 왔다. 부스 체험하다가 만난 것 같았는데......
“야! 얼른 설명드려야지! 왜 멍 때리고 있어!!”
친구의 외침으로 인해 정신이 확 깼고 앞에 있는 손님들에게 게임 설명을 해드렸다. 얼레벌레 설명을 한 것 치곤 잘 한 것 같아 뿌듯함을 느끼긴 개뿔 친구에게 한 소리 들었다. 왜 멍 때리고 있었냐, 집중 안 할거냐 등등 여러 말들을 들으며 멘탈 탈탈 털리게 한 소리 듣고 나서는 딴 데 정신 안 팔리게 똑바로 차리고 사람들을 맞았다.
오후 타임이 끝나고 모든 부스 활동이 끝났을 때 축제는 막을 내렸다. 축제의 막이 내려짐과 동시에 안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아- 제 nn 회 후쿠로다니 학교 축제를 막 내리겠습니다. 모든 학생 여러분들 오늘 하루 즐거우셨나요? 부디 즐거우셨길 바라고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딴 길로 새지 말고 곧바로 집으로 가시길 바랍니다. 그럼 지금까지 제 nn 회 후쿠로다니 축제였습니다.”
마지막 멘트를 끝으로 안내방송은 끝나자 학생들은 아쉬움과 후회의 탄성을 내뱉으면서 며칠 더 했으면 좋겠다, 정말 즐거웠다, 꼭 내년에도 했으면 좋겠다 등등 한 두 마디 덧붙였다. 친구들과 다 같이 반을 치우고 각자 자기 자리에 선 후 반장이 대표로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였고 이어 우리도 인사를 했다. 선생님은 우리의 인사를 받으시곤 바로 집으로 가라는 말씀만 하시고 바로 반을 나가셨다. 난 반을 나와 친구들에게 잘 가라고 인사를 하고 계단을 타고 1층으로 빠르게 내려간 후 실내화에서 운동화로 갈아 신고 교문으로 향했다.
교문을 지나자마자 집으로 쌩하니 달렸다. 걸어서 갈 때는 멀게만 느껴졌는데 뛰어서 가니 금방 도착했다. 문을 열고 가방은 내 방에 던지고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갔다. 손을 씻고 나와 방에 들어갔고 어제 썼었던 다이어리를 선반에서 꺼내 펼쳤다. 새로운 페이지가 나오게 넘기고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모조리 썼다. 무엇을 했고 파트너는 어디에서 만났는지 파악하기 쉽게 말이다.
다 쓰고 나서 다이어리를 덮은 후 선반에 다시 꽂아놓고 침대에 누워 좀 쉬다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갔다가 후딱 씻고 나왔다. 주방에서 물 컵에 물을 담아 들고 방으로 오면서 파트너가 누군지 골똘히 생각했다. 방문을 닫고서 허리에 한 손을 두고 물을 마시고 책상 위에 소리 나게 올려놨다. 그리곤
“파트너! 너 딱 기다려 내가 곧 찾는다!!”
큰 소리로 의기양양하게 말한 후 침대에 엎어졌다.
전 날에 알람을 맞춰놔서 다행히도 지각은 면했다. 매일 듣는 지루한 수업을 들으면서 필기도 하고 친구들과 쪽지도 돌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1교시부터 4교시까지 수업을 들으니 너무나 힘들어서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자마자 난 책상 위로 엎어졌다. 친구는 이런 날 보며
“5교시부터 7교시는 선생님들 반에 안 들어온대.”
너무나도 좋은 소식을 가져왔다. 그리고 덧붙여
“이따 방과 후에 배구부 연습 있다는데 보러가자.”
연습을 보러 가자고 했는데 보러 갈 수 있는 건가? 우리 학교 배구부는 전국 대회에 많이 출전하는 팀이다 보니 부원들이나 매니저 외 학생들은 들어갈 수 없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번 연습하는 건 다른 학생들도 와서 볼 수 있대.”
내 대답이 늦어지는 걸 눈치 챈 친구는 뒤이어 다른 학생들도 보러 갈 수 있다는 것을 말했다. 이렇게까지 같이 가고 싶은 걸 티내는 거 보면 나도 어쩔 수 없지. 같이 가줘야겠다.
“알겠어, 가자.”
“진짜지? 그럼 이따 방과 후에 어디 가지 말고 네 자리에 딱 있어야한다.”
친구는 저리 말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친구와 이야기하느라 점심시간도 별로 안 남았겠다 해서 아까 매점 가서 사 온 초코우유를 뜯어 원 샷을 했다. 그리곤 딱 맞게 점심시간이 끝마치는 종이 쳤다. 난 얼른 뒤에 비치된 쓰레기통에 다 마신 초코 우유갑을 버리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고 방과 후 시간이 되어 가방을 싸고 자리에서 멍 때리고 있었는데 친구도 가방을 다 쌌는지 어느샌가 내 자리로 와 있었고 내 손을 잡고 반을 나섰다. 배구부가 매일같이 연습하는 장소인 체육관에 도착하였고 우린 자연스럽게 2층 관람석에 앉았다. 그리곤 연습하는 걸 구경했다. 옆에 앉은 친구는 자꾸 주장인 보쿠토가 스파이크 칠 때 가장 멋지다고 입이 아프게 말하고 있었다. 솔직히 그것까진 잘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는 건 멋지다고 생각한다. 친구의 말에 맞장구 쳐주고 있다가 주변이 시끄러워서 무심코 앞을 봤는데 공은 내 쪽으로 빠르게 오고 있었다. 공이 내 쪽으로 빠른 속도로 오는 것을 보고 몸을 움츠렸고 그 결과 공에 맞았다.
공은 내 몸. 그니까 팔 부분에 맞고 1층으로 떨어졌다.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맞은 부분이 얼얼해서 말이 하나도 안 나왔다. 피멍이 들겠다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팔 쪽에 고통이 몰려왔다. 갑자기 몰려오는 고통에 팔을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옆에 있던 친구는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가 내가 주저앉은 것을 보고 따라 주저앉아 괜찮냐고 물어왔다. 그에 난 얼굴을 찡그린 채 고개를 끄덕이면서 팔을 주물렀다.
“...괜찮으십니까?”
갑작스런 말소리에 놀라 몸을 잘게 떨었다. 미간을 찡그린 채 고개를 돌려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고갯짓을 본 배구부 남학생은 날 일으키며 공주님 안기를 하고 1층으로 내려갔다. 공주님 안기를 하는 남학생에 놀라 발버둥을 쳤지만 그렇게 발버둥을 치면 떨어진다는 말과 함께 아까보다 세게 안곤 벤치 쪽으로 갔다. 벤치에 도착해서 날 내려줬고 매니저로 보이는 여학생에게
“멍들 수 있으니까 약 좀 발라주시겠어요?”
그리고 덧붙여
“아, 그리고 보쿠토상은 저 좀 봅시다.”
라고 했다.
벤치에 앉아 이게 뭔 상황인가 생각하고 있던 참
“안녕~ 우리 주장 땜에 다쳤네~ 미안~ 많이 아프지~”
라며 갈색 단발머리 여학생이 말을 걸어왔다.
“어... 아냐 괜찮아 그럴 수 있지.”
“혹시 모르니까 팔 좀 줘볼래?”
팔을 달라는 말에 난 아까 맞은 팔 부분을 걷어 보여줬다. 팔에는 보기 좋게 피멍이 들어있었다. 맞은 지 별로 안 된 것 같았는데 벌써 피멍이 들 정도면 아까 얼마나 세게 맞은 것인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여학생은 나에게 안 아프냐고 이런 약 발라본 적 있냐고 말을 걸어왔다. 여학생과 이야기하면서 난 이 여학생에 대해 아는 게 많아졌다. 여학생의 이름은 시로후쿠 유키에. 약을 바르고 잠시 마사지하는 동안 요비스테도 하게 되고 배구부에 대한 여러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약을 다 바르고 일어날 찰나에 내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져서 위를 쳐다보니...... 남학생 하나가 얼굴에 그늘이 진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내 시선을 인식한 건지 나에게 미안하다고 여러 번 사과를 했다. 사과를 하는 남학생 옆에는 아까 날 안고 내려온 학생도 있었다. 옆 학생은 나에게 사과하는 학생의 이름이 보쿠토 코타로 라고 알려줬고, 더불어 자신의 이름도 알려줬다. 그에 난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나 때문에 연습 중지된 거 아니냐고 얼른 연습 시작하라고 말하고 자리를 피하듯 2층으로 갔다. 2층으로 올라온 난 근처 의자에 앉아 심호흡을 했다. 심호흡을 하고 있는 동안 친구는 내게 다가와 재차 팔이 괜찮은지 확인했다.
몇 시간이 지나고 배구부 연습은 끝이 났다. 2층에 있던 학생들은 하나 둘씩 1층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고 곧이어 나와 친구도 내려갔다. 천천히 내려가 정문으로 가는 도중 배구부원들도 옷을 다 갈아입은 건지 하나 둘씩 나오고 있었다. 자기를 아카아시라고 칭한 남자애와 눈이 마주쳤고 어디에선 나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애 앞으로 달려가 핸드폰을 내밀고 번호를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남자애는 희미하게 웃고는 “드릴게요.” 라고 말하곤 내 핸드폰을 가져가 11자리를 치고 나에게 돌려줬다.
핸드폰을 받자마자 난 얼굴이 빨개져선 그 자리를 달아났다. 뒤에서 뭐라 뭐라 하는 것 같았는데 난 그것에 개의치 않고 집까지 무작정 뛰었다. 집에 도착해 곧바로 방으로 들어왔는데 다리에서 힘이 빠져 스르륵 주저앉았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고 있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앞 의자에 앉았고 선반에서 다이어리를 꺼내 오늘 있었던 일을 써내려갔다. 다이어리를 다 쓰고 씻으려고 옷을 벗으면서 손목을 봤는데 또 숫자가 줄어있었다. 이제 난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신경 안 쓰고 화장실로 들어가 씻고 나와 아까 받은 번호로 연락을 했다.
연락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고 여러 번 연락을 주고받으니 아카아시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내가 알게 된 것을 말하자면 현재 아카아시는 2학년이지만 배구부 부주장을 맡고 있고 반에서는 반장을 맡고 있다고 했다. 이 외에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몇 번 더 연락을 하다 아카아시는 내일 아침 일찍 부활동이 있다고 먼저 잔다고 해서 연락이 끊겼다. 난 아카아시에 아직 모르는 게 한참 많지만 이것만은 알 것 같다. 내가 아카아시를 좋아한다는 것을.
난 그 이후에도 몇 번이나 배구부 연습을 볼 수 있는 날이라면 체육관에 가서 연습하는 것을 끝까지 지켜봤다. 여러 번 와봐서 다른 부원들과도 친해졌고 매니저인 유키에와 카오리와 친해져 한두 번씩 매니저 일하는 것을 도왔다. 매니저 일을 도와주면서 아카아시와 이야기 할 시간도 자연스레 늘어났고 이런 날은 아카아시가 날 집까지 데려다 줬다. 어색하지 않게 집까지 같이 가서 그런지 처음 만난 날보다 더 친해진 것 같았다. 이 날도 똑같이 매니저 일을 도왔고, 날이 어둑어둑해져 아카아시와 같이 집 가는 길에 난 데이트 신청을 했다. 근처 새로 생긴 아쿠아리움에 가자고. 아카아시도 좋다고 해서 아쿠아리움에 가는 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난 처음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다이어리를 쓰고 있었고 오늘도 다이어리를 펼쳐서 쓰고 있던 도중 아카아시에게 연락이 왔다.
연락을 보니 내일 같이 갈 아쿠아리움 티켓을 구매해 나에게 보내온 것이다. 원래라면 내가 티켓을 사서 줘야 했었는데. 연락을 보자마자 놀라 왜 사서 줬냐고, 이거 뭐냐고, 내가 사서 줘야하는 거 아니냐고. 연달아 보내니 아카아시는
-그냥... 제가 사고 싶었어요.
라고 띡 하나 보내왔다. 난 이 연락을 보고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 뒤이어 연락이 왔다.
-그럼 나중에 저랑 또 데이트 해주세요.
이어 온 연락을 보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열을 식히기 위해 손 부채질을 했다. 조금 식혀졌을 때 알겠다고 답장을 보낸 뒤 다이어리를 쓰는 것도 잊고선 침대로 다이빙 해 다리를 붕붕 흔들었다.
“아 진짜... 이게 뭐야 이렇게 훅 들어오면 나보고 어떡하라고...”
베개로 얼굴을 가리곤 다시 생각하며 자그맣게 말했다. 거울을 통해 얼굴을 보니 잘 익은 토마토가 따로 없었다. 빨개진 얼굴이 조금 식은 뒤 일어나 책상에 앉아 쓰다 만 다이어리에 방금 전 일까지 빠르게 쓰고 다시 침대에 엎어졌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난 일어나 준비를 다 했다. 과하지 않게 꾸민 후 검은색 숄더백을 챙긴 뒤 캔버스를 신고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 거울을 보며 다시 한 번 점검 한 후 숄더백 안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 아카아시에게 연락을 했다.
현재 시각 9시. 난 10분정도 일찍 도착해서 산책할 겸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 걸음을 빨리했다. 광장 시계탑 앞 쪽에는 이미 아카아시가 도착해있어서 난 더욱 걸음을 빨리했다.
“아카아시! 많이 기다렸어?”
거의 다 달았을 때 난 뛰어갔다. 아카아시는 다친다고 뛰어오지 말고 걸어오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난 그의 말을 못 들은 척 하곤 빨리 도착하려고 뛰었는데. 발이 꼬여 넘어질 찰나에
“선배, 제가 뛰지 말라했잖아요.”
아카아시는 저리 말하며 날 받아줬다. 그리고 날 바로 세워 손에 들고 있던 커피 한 잔 줬다.
우린 이야기 하면서 아쿠아리움이 있는 쪽으로 갔다. 갔더니 아직 입장 전 이긴 하지만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마 새로 생기고 홍보가 잘 된 탓에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우린 매표소로 가 예매한 표를 보여주고 현장 티켓으로 바꿔 줄을 섰다. 기다린 지 10분 정도 지났을까 아쿠아리움은 문을 열었고 앞에 줄을 선 사람들 하나 둘 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리도 조금 기다린 후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린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무작정 돌아다니기보단 주변을 보다가 팸플릿 받을 수 있는 곳을 발견해 팸플릿을 받고선 돌아다녔다.
먼저 2층에 있는 곳으로 가 큰 수족관에 있는 물고기들을 보며 돌아다녔다. 다음은 3층 그 다음은 4층. 여러 곳을 몇 시간동안 쉬지 않고 돌아다녔더니 진이 다 빠졌다. 아카아시는 그런 날 보고
“1층에 카페 있던데, 거기 가는 거 어때요?”
라며 1층에 있는 카페에 갔다. 카페 안 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은 후 음료를 시킬려고 카운터로 가면서 아카아시에게 신신당부 했다. 음료는 내가 산다고.
“선배, 선배는 뭐 마실 거예요?”
“음... 난 청포도 에이드?”
“청포도 에이드 하나 하고 카페라테 하나 주세요.”
“아 그리고 결제는 이걸로 해주세요.”
내가 손쓸 새도 없이 아카아시는 음료를 샀고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아카아시는 얼굴에 웃음을 띠운 채 날 봤고
“선배, 얼른 자리로 가요.”
라며 내 등을 떠밀며 자리로 돌아갔다. 난 자리로 돌아가면서 아카아시에게 뭐라 했다. 하지만 아카아시는 네네 할 뿐 별 다른 말은 안 하고 자리에 앉았다. 10분 정도 기다렸을 때 음료는 나왔고 우린 음료를 자리로 가져와 여기에서 본 것들을 이야기를 했다.
음료를 다 마시고 잔을 카운터에 놓은 다음 우린 슬슬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고 내 집에 다 달았을 때 아카아시는 나에게
“다음에는 유성우 보러가요.”
말하고 뒤돌았고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들어가 방으로 들어간 후 난 선반에 있는 다이어리를 꺼내 오늘 있었던 일들을 썼다. 옷을 다 갈아입고 손목 부분을 보니 숫자가 줄어있었다.
“드디어 찾았다ㅎ 내 파트너.”
주말에 아카아시와 데이트를 하고 나서 그 뒤로 바뀐 건 별로 없었다. 우린 전과 똑같이 배구부 연습이 끝나면 같이 집을 가고 쉬는 날 시간이 되면 만나서 놀았다. 그리고 오늘은 아카아시와 유성우 보러 가는 날이었다. 오늘 밤 유성우가 떨어진다고 해서 같이 보러 가기로 부활동이 시작하기 전에 말했다. 우린 교복에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편의점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 했다. 만날 시간이 다 되어서 난 슬슬 나갔다. 편의점에 거의 다 달았을 때 난 얼른 횡단보도를 걸어 도착했다. 내가 도착하고 나서 3분 정도 지나고 아카아시도 도착했고 우린 유성우가 잘 보이는 신사 쪽으로 옮겨갔다. 신사로 가면서 조용해지지 않게 여러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말하는 건 나뿐이었고 아카아시는 내 말에 반응만 할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신사에는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우린 다른 사람들에 가려 잘 안 보이지 않게 좀 떨어진 쪽으로 갔다. 우린 유성우가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한 사람이 소리 쳤다.
“유성우가 떨어진다!!”
유성우가 떨어진다고. 난 얼른 고개를 올려 유성우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고 재빠르게 소원을 빌었다. 난 소원을 다 빌고 고개를 틀어 옆을 보니 아카아시도 소원을 빌고 있었다. 내 시선을 느낀 건지 아카아시는 시선을 나에게 맞춘 후
“선배는 무슨 소원 빌었어요?”
물어왔다. 하지만 이런 소원 같은 건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잘 안 이루어진다고 한 게 떠올라 입가에 검지를 올린 후 비밀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내가 아카아시에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물었더니 아카아시는 고개를 숙여
“선배한테 고백하려는데 성공하게 해달라고요.”
내 귓가에 대고 말했다. 난 아카아시의 말을 듣고 경직이 되었고 그런 날 보고 아카아시는
“선배, 선배 파트너 저 인건 알아채셨죠?”
“저랑 사귀실래요?”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난 침대헤드에 몸을 기댄 채 고등학교 때 쓴 다이어리를 다시 읽고 있을 때.
“선배... 뭐하세요...”
“어, 케이지 일어났어?”
바로 내 옆에 있는 이 커다란 녀석이 나의 파트너이자 나의 연인이다.

